카일 라이트의 눈부신 성장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재빈>

우리는 흔히 메이저리그를 ‘꿈의 무대’라고 부른다. 천문학적인 연봉과 다양한 혜택, 그리고 빅리거로서의 명예.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해 이런 것들을 누리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야 한다. 이는 연도별 최고의 재능으로 꼽히는 드래프트 1라운더들에게도 똑같이 해당하는 조건이다.

2017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1라운드 지명자는 카일 라이트였다. 밴더빌트대학교 시절만 하더라도 라이트는 팀의 에이스였으며 프로 무대에서도 바로 통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그의 계약금은 헌터 그린, 브랜든 맥케이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700만 달러였다. 애틀랜타가 라이트에게 거는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기대대로 라이트는 입단 2년 차인 2018년에 빅리그에 데뷔했다. 아주 빠르게 기회를 받은 것이다. 기회는 2019, 2020시즌에도 주어졌다. 하지만 라이트는 그 기회 속에서 자신을 입증해내지 못했다(ERA : 8.69(2019)/5.21(2020)). 

반전이 일어난 것은 지난 시즌이었다. 라이트는 21승을 올리며 리그 다승왕을 차지했다. 직전 해 무승에 그쳤던 투수가 그다음 시즌 20승을 기록한 것은 빅리그 최초의 기록이다. 다른 지표에서도 성장이 두드러졌다. 데뷔 후 4년간 6.64에 그쳤던 FIP는 3.58로 리그 23위에 올랐으며 fWAR 또한 2.9로 리그 27위를 기록했다. 다승왕이라는 성과는 단순한 운이 아니라 달라진 실력에서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라이트는 어떻게 1년 만에 환골탈태할 수 있었을까?

 

달라진 레파토리

메이저리그 데뷔 당시 라이트는 포심,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싱커까지 다양한 구종을 구사했다. 이 중 첫 두 시즌 라이트의 선택을 받은 구종은 포심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평균보다 조금 빠른 94.5마일의 구속에 평균 이하의 수직 무브먼트를 가진 포심은 맞아 나가기 일쑤였다. 세컨드 피치였던 슬라이더도 아쉬웠다. 데뷔 초반에는 빅리그 타자들을 상대로 효과를 보는 듯했지만, 2020년부터 통타당하기 시작하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라이트는 변화를 택했다. 돌파구는 바로 싱커와 커브였다. 2020년 여름, 라이트의 밴더빌트대학교 시절 투수코치였던 스콧 브라운은 그에게 가장 잘 던지는 공인 싱커를 더 던져보라고 조언했다. 애틀랜타의 단장 보조를 맡고 있던 벤 세스타노비치와 피칭 코디네이터였던 폴 데이비스 또한 유사한 이야기를 했다. 그가 에이스로 활약했던 대학교 시절처럼 싱커와 커브의 구사율을 높여보라는 것이었다. 라이트는 조언을 받아들였다. 지난 시즌 라이트는 커브(34.1%)와 싱커(23.9%)를 집중적으로 던졌다. 커브와 싱커 모두 리그 Run Value 상위 10위 안에 들었고 특히 커브로 잡은 삼진 89개는 리그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빠른 커브

라이트의 커브를 대표할 수 있는 수식어는 빠른 구속이다. 커브 구속은 21년까지만 해도 80마일 언저리였으나 지난해에만 4마일 높여 평균 84.7마일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 커브를 100구 이상 던진 선발투수 가운데 헤르만 마르케스에 이어 두 번째로 빨랐다.

커브는 꼭 구속이 빠르다고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팬그래프’에서 제공하기 시작한 Stuff+라는 스탯을 보면 커브 역시 빠를수록 좋은 경향이 드러난다. Stuff+란 쉽게 말해 구속, 무브먼트 등을 이용해 공의 구위를 나타내는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아래 표는 2022시즌 구속-무브먼트에 따른 커브의 Stuff+를 표로 나타낸 것이다. 구속이 빨라짐에 따라 Stuff+가 높아짐(빨간색)을 알 수 있으며 특히 85마일 이상인 경우 무브먼트와 무관하게 빨간색이다.

< 구속, 무브먼트에 따른 커브의 Stuff+ >

또한 라이트의 커브는 패스트볼과 좋은 ‘미러링’을 이뤄냈다. 피치 미러링이란 회전 방향이 반대인 두 구종을 조합해 던지는 투구 전략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아래 그림에서 포심과 커브는 회전의 축은 같은데 포심은 백스핀이 걸려 있고 커브는 탑스핀이 걸려 있다. 즉 회전축이 180도 차이 나는 것이다. 이렇게 회전축이 180도 차이 나는 두 구종은 타자가 회전으로 구분하기 어려워지는데, 투구에 이런 효과를 이용하는 것을 피치 미러링이라 한다. 

<회전방향 예시-상: 백스핀 / 하: 탑스핀 (클릭 필요)>

라이트의 경우 커브와 포심의 회전축 차이는 가장 완벽한 조건인 180도였으며, 싱커와도 142.5도로 나쁘지 않은 수치를 기록했다. 위력 있는 구위와 훌륭한 미러링이 합쳐져 라이트의 커브는 좋은 구종으로 거듭났다. 커브의 피안타율은 0.211에 불과했으며 피장타율도 0.307에 그쳤다. 커브의 Chase%(존 바깥 공에 스윙한 비율)는 36.6%로 그가 던진 5개 구종 중 가장 높았다. Whiff%(헛스윙/스윙) 또한 33.5%로 준수했다(50타석 이상 커브를 던진 선수 111명 중 39위).

 

가라앉는 싱커

싱커 또한 제 역할을 해냈다. 구속은 포심과 마찬가지로 그럭저럭 빠르긴 했지만 특별하지는 않았다(500구 이상 던진 319명 중 112위). 라이트 싱커의 강점은 평균 이상의 구속에 더해진 훌륭한 무브먼트에 있었다. 지난해 라이트의 싱커는 평균 대비 3.9인치 큰 수직 무브먼트, 1.2인치 큰 수평 무브먼트를 만들어냈다.

라이트가 던지는 싱커의 회전 효율은 82%로 지난 시즌 싱커를 250구 이상 던진 161명 중 125위에 해당하는 성적이었다. 떨어지는 회전 효율은 포심 패스트볼의 떠오르는 무브먼트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싱커의 가라앉는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데는 적격이었다. 라이트는 이 싱커를 우타자 상대로 많이 던졌는데(우타자 상대 구사율: 40.6% / 좌타자 상대 구사율: 10.1%), 특히 우타자 바깥쪽 낮은 코스에 싱커를 던지며 그 효과를 극대화했다.

<카일 라이트 2022년 싱커 히트맵>

싱커의 좋은 생김새, 그리고 그 생김새를 살리기 위한 노력은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싱커를 친 타구에서 땅볼 비율이 68%로 매우 높았고, 특히 빗맞은(Topped) 땅볼이 그 중 상당 부분인 50%를 차지했다. Hard Hit%도 38.1%로 준수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500타석 이상 투구한 선수 105명 중 30위에 해당하는 0.351의 피장타율이었다.

 

미래의 에이스를 꿈꾸며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라이트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1라운더에 대한 팬들의 기대감은 식어가고 있었으며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라이트는 반전 드라마를 써 내려가며 팬들에게 자신을 입증해냈다.

“지난해(2021년)는 마운드에 오를 때,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너무 받았고 심적으로도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제 공을 믿고 던지고 있어요”

– The Athletic과의 인터뷰에서

디애슬레틱과의 인터뷰에서 라이트는 그동안 부진에 있어 심리적인 압박을 느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자신의 공에 믿음이 생겼고, 마운드에서도 편안함을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더군다나 라이트의 나이는 27살, 이제 전성기가 시작될 나이이다. 과연 라이트는 어디까지 날아오를 수 있을까? 

 

참고 = Fangraphs, BaseballSavant, TheAthletic, Max’s Sporting Studio

야구공작소 원정현 칼럼니스트

에디터 야구공작소 도상현, 오연우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재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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